사랑은 철저한 '무장 해제'를 요구합니다. 사랑의 만남은 무기 없는 마음입니다. 어쩌면
개인간 만남의 무장해제가 국제적 무장해제보다 더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매우 친밀한
관계에서도 아주 능숙하게 총칼을 뒤에 감추고 있을 것입니다. 지나간 상처를 품고있는 것,
상대의 동기를 삐딱한 눈으로 보는 것, 가벼운 의심 따위 등이 다 방어용 무기로 등뒤에
감춘 칼처럼 날카로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아무런 방어 없이 동료
인간을 대할 수 있습니까? 자신의 약한 모습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을까요? 이것이 우리
질문의 핵심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그들의 관계에서 권력을 배제하고 온전히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군인들도 앉아서 먹을 때에는 무기를 내려놓습니다. 먹는다는 것은 평화와 안식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잠자리에 누울 때는 그보다 더 약해집니다. 식탁과 침대는 연약함 중에 사랑이
표현될 수 있는 친밀함의 두 처소입니다. 사랑할 때에 남자와 여자는 모든 형태의 권력을
벗고 무장 해제로 서로 부둥켜안습니다. 벌거벗은 그들의 몸은 약한 부분까지 조금도 숨
기지 않고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것의 상징입니다.

친밀한 성행위를 통한 남녀의 육체적 만남이 서로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마음의 표현이
아니라면, 약자의 창의적 교제는 아직 이루어지지 못 한 것입니다. 조건부나 한시적으로
또는 정신적 제약 속에 이루어지는 모든 성관계는 여전히 탈취의 형태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는 지금은 너를 원하지만 내일은 원하지 않는다. 나는 너에게서 뭔가를 원할 뿐
'너'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사랑은 제약이 없습니다. 서로 온전히 헌신할 때만,
즉 평생에 걸쳐 자신의 전 인격을 내어 줄 때만 남녀의 만남은 온전한 결실에 이를 수
있습니다.

세심한 관계 개발을 통해 온전한 무장 해제의 자유에 이를 때, 남녀의 나눔은 용서가 되고,
벌거벗은 몸은 수치가 아닌 공유의 갈망을 불러일으키며, 최대 약점은 공동의 힘의 핵이
됩니다. 약점을 온전히 내보이는 상태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며, 이것이 바로 사랑의 신비
입니다.

권력은 죽입니다. 그러나 약함은 창조합니다. 자율과 자기 의식과 자유를 창조합니다.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을 창조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 생명이 완전한
발육과 성숙에 이를 수 있는 훌륭한 기법을 창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아이의 신체적,
정신적, 영적 건강의 최고 안전 장치는 그 아이에게 쏟는 관심이 아니라, 부모가 서로
아낌없이 사랑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

탈취라는 존재 형태가 유일한 가능성이라면 파멸은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찾을 수 있다면 창조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머튼이 말했듯이, 사랑의
기초는 악을 선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악은 궁극적인 것도,
변화 불능의 것도 아닙니다. 간디의 비폭력 사상은 본질적으로 용서가 모든 적을 친구로
바꿀 수 있으며, 증오 안에 사랑이, 절망 안에 희망이, 의심 안에 믿음이, 악 속에 선이,
죄 속에 구속이 숨어 있다는 확신에 기초하고 있었습니다. 사랑은 악을 선으로, 파멸을
창조로 전환시키는 용서의 행위입니다. 진실하고 부드럽고 무장 해제된 사람의 만남을
통해 인간은 창조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분명 성행위는 종교적 행위입니다. 자신의 십자가 위에서 철저히 무장
해제하고 가장 약한 모습까지 온전히 드러낼 때, 진정한 자유인인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인생 최고의 성취, 즉 우리가 창조하는 새 생명은 바로 이런 자기 헌신의 행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까?

과거에 으레 대립 개념으로 간주되던 종교와 성이 하나의 실체로 연합됩니다. 둘 다
온전한 사랑과 자기 헌신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 <친밀함>(헨리 나우웬, 두란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