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뿌리』(홍성태 지음/박영사) 중에서

브랜드와 연결된 개념은 무시한 채, 유명 브랜드를 등에 업고 사정없이 이를 확장해 나가려다 실패한 경우를 많이 본다.

밀러가 만든 하이 라이프 맥주는 79년, 버드와이저 다음 가는 2위 브랜드로서 1년에 2,300만 배럴을 판매했었다. 그러나 밀러라는 동일한 브랜드하에 밀러 라이트와 밀러 제뉴아인 드래프트를 내어놓자 하이 라이프는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90년의 상황을 보면 버드와이저가 5,000만 배럴을 판매한 데 반해 하이 라이프는 고작 640만 배럴을 판매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아동들이 좋아하는 맥도널드 브랜드로 아동들의 옷을 판매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런데 맥도널드가 맥키드라는 이름하에 아동복을 개발하는데 2억 2천 5백만 달러나 투입했지만, 매출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나의 브랜드에 하나 이상의 제품개념을 붙이려 하면 안 된다는 점을 깨우쳐 준다.

「고만의 신제품 뉴스」라는 신문에 의하면, 91년 첫 다섯 달 동안 시장에 사로 나온 6,125개 신제품 중 5%만이 새 브랜드를 붙였고, 나머지는 기존 브랜드에 얹혀 나왔다고 한다.
이와 같이 브랜드의 개념을 잘 이해하고 보전하기보다는 기껏 가꾸어 놓은 이미지에 쉽게 편승하려는 사람들은 브랜드를 애지중지 키워온 나이 많은 중역이 아니라 갓 대학을 나온 젊은 MBA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이에 대해 라이트라는 경영자문가는 MBA가 "브랜드 자산의 살인자(Murderer of Brand Asset)"의 약자가 되고 말았다고까지 비난한다.

새로운 브랜드를 하나 키우는 데는 시간과 비용의 소모뿐 아니라 지극한 정성과 각별한 애정이 요구된다. 1955년에 소니는 손바닥 크기의 소형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처음 생산해 낸 무명의 회사였다. 그 때, 시계로 유명한 부로바가 가전사업에 진출하고자 라디오 30만대를 주문해 왔다. 라디오에 부로바 상표를 부착해 달라는 조건이었다. 소니 창업자의 한 사람이며, 당시 미국 지사의 책임자였던 아키오 모리타는 본국으로 이 사실을 타전했다. 그 때만 해도 소니사의 형편은 겨우 판잣집 신세였기 때문에 부로바의 제안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것이었다. 본사에서는 "마음이 변하기 전에 빨리 계약하라"고 했다. 그런데 모리타는 하룻밤을 꼬박 새운 고심 끝에 이 제안을 거절해 버렸다.

놀란 쪽은 부로바였다. 부로바는 50년의 전통을 가진 세계 굴지의 회사였고, 소니는 이제 갓 시작한 영세 기업이었다. 소니제품에 부로바 마크를 넣는 것은 소니에게 엄청난 영광이라고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리타의 생각은 달랐다.
"부로바도 50년 전에는 소니처럼 시작했을 것입니다. 부로바가 50년 동안에 지금처럼 훌륭하게 자랐다면, 소니도 50년 후에는 부로바 만큼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소니의 제품은 소니의 이름으로만 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그 후 불과 20년 만에 두 회사의 모습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만일 모리타가 부로바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오늘날과 같은 소니의 명성은 갖지 못했을지 모른다.
브랜드 하나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유혹들을 뿌리쳐야 하는지 총명한 MBA들이 깨닫는다면 무임 승차를 쉽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뿌리』(홍성태 지음/박영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