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저자 : 빅토르 위고
출판사 : -
출판년도 :
분야 : 해외고전문학
|
노트르담의 꼽추
저자 : V. 위고 / 출판사 : 계림출판사
레미제라블
저자 : V. 위고 / 출판사 : 하서출판사
레미제라블
저자 : V. 위고 / 출판사 : 하서출판사
레미제라블
저자 : V. 위고 / 출판사 : 하서출판사
|
|
프랑스 낭만주의의 기수 26세 때 쓴 낭만극 《에르나니》가 대성공함으로써 낭만파의 기수가 된 위고. 그 《에르나니》가 초연되었을 때의 일이다. 극은 겨우 3막째로 접어들었을 뿐이었는데 어느 출판사의 사장이 위고에게 원고의 출판 허가를 의뢰하러 왔다. 위고는 "우선 연극이나 끝난 다음에 이야기를 해봅시다"라고 말했는데, 사장은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것이었다. "아뇨, 한 막이 끝날 때마다 인세를 더 내고 싶어지기 때문에 5막까지 다 보고 나면 도저히 인세를 지불할 수 없게 될 겁니다." 《레 미제라블》을 출판했을 때에도 이런 식의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그 당시에도 이미 명성이 자자했던 위고였지만 역시 신작의 평판이 마음에 걸려 출판사에 다음과 같이 전보를 쳤다. "?" 그러자 출판사로부터의 세상에서 가장 짧은 회답이 왔다. "!"
낭만주의 선언 빅토르 위고는 1802년 브장송에서 장군의 아들로 태어났다. 엄격한 아버지는 위고가 이공과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 준비과정으로 코르디에 기숙학교에 입학시키지만 그는 남몰래 글을 쓰기 시작했고 좋아하는 시인의 작품을 옮겨쓰곤 했다. 15세 때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주관하는 시 부문에서 상을 받는다. 첫 시집 《시가집 Les Odes》을 발표함으로써 본격적으로 문인의 길에 들어선 위고는 자신의 화려한 시작에 도취돼 수첩에 "나는 샤토브리앙처럼 되고 싶다.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썼다. 당시의 그는 이미 낭만주의의 대가라고 칭송받던 소설가 샤토브리앙에 심취해 있었고, 그의 왕당파적 신념과 열정, 솔직함에 영향을 받았다. 샤토브리앙 역시 위고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며 동료로서 공손히 대우했다고 전해진다.
위고는《문학 예술 연보》나 《프랑스의 뮈즈》같은 잡지에 글을 쓰면서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중립에 있는 듯했지만, 타고난 그의 예민한 감수성은 낭만주의의 물결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나클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뮈세, 네르발, 비니, 발자크, 생트-뵈브 등의 청년 문인들과 함께 고전주의에 대항하고, 《크롬웰 서문 Pr face de Cromwell》을 발표하여 낭만주의를 선언한다.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사람들은 이 시기에 위고가 가장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만족스런 문학활동과 더불어 2남 2녀의 아이들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 친구였던 생트-뵈브가 행복한 가정에 끼여들면서 위고는 부인과 멀어지고, 줄리에트 드루에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아내에게 배신당한 것보다는 자신이 아내를 버렸다는 생각에 더 괴로워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성주들 Les Burgraves》이 완전히 실패할 무렵에는 사랑하던 딸 레오폴딘이 남편과 강가에서 익사하는 사고까지 생겼다. 슬픔은 극도에 달하고 실어증까지 걸린 위고는 집필의 공백기를 맞는다.
이후 왕실의 호감을 얻어서 상원의원에 임명되지만 곧 혁명의 불길에 휩싸이고 만다. 진보적 성향의 위고는 국민을 억압하는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반대하다가 추방당하고 영국에서 망명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그는 사회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성향으로 변화한다. 나폴레옹 3세의 왕정이 끝나고 새로운 공화정치가 시작되자 19년 동안 망명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위고는 왕성한 작품활동을 재개했다. 당시 여러가지 사건에 자극을 받아, 그의 힘은 10배로 불어난 것 같았다. 그는 시에 있어서 그의 주요 작품인 3권의 방대한 시집 징벌의 시집, 관조의 시집, 여러 세기의 전설을 썼고, 평론과 10권으로 구성된 레 미제라블 등 장편소설을 썼다.
1870년 9월의 쿠데타로 프랑스에 돌아올 수 있게 되자 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거기에서 프러시아 군의 포위를 겪고, 국회의원에 선출되고, 알자스-로렌의 양도에 항의하고, 코뮌 혁명 정부 이후에는 화해를 권장했다. 그는 그 후에도 15년을 더 살면서, 새로운 시집 공포의 해, 할아버지 노릇하는 법, 여러 세기의 전설 제2권 및 제3권, 그리고 93년 등 장편소설을 썼다.
그는 온 국민의 숭배를 받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지칠 줄 모르는 창작가를 찬미하고, 이 늙은 공화주의의 투사를 사랑했다. 그는 1885년 볼테르처럼 굉장한 숭배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밤새도록 횃불에 둘러싸여 개선문 아래 안치됐으며, 이튿날 파리의 온 시민이 팡테옹까지 그의 관 뒤를 따랐다. 위고의 서정적, 서사적, 풍자적 재능은 시, 소설, 희곡 등 다방면에 걸쳐 빛을 발휘했고 프랑스 문단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인도주의와 자유정신 특히, 가족과 어린이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은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 억압받는 사람에 대한 연민과 박애사상으로 확산되어 중심사상을 이뤘으며 지금까지도 시대의 메아리가 되어 우렁차게 울리고 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루이 11세 치하의 15세기의 파리에서 가장 장엄한 건물은 노트르담의 성당이었다. 이 성당의 종지기인 꼽추 카지모도는 어느날 축제일에 가짜 교황으로 선출된다. 이 축제일에 성사극을 썼던 가난한 시인 크랭그와르는 연극이 실패하자 무일푼이 되어 이곳저곳을 떠도는데, 카지모도와 한 사나이가 아름다운 집시 에스메랄다를 납치하려는 것을 풰뷔스 대장이 구해주는 장면을 보게 된다. 카지모도는 그 자리에서 붙잡히고 기적궁이라고 불리는 거지들의 소굴로 들어가게 된 크랭그와르는 집시무녀인 에스메랄다와 명목상의 결혼식을 올리고 남편으로 살게 된다.
축제 다음날 카지모도는 전날의 납치 사건 때문에 광장에서 체벌을 받게 되고 목이 말라 어쩔 줄을 몰라하는 그에게 오직 에스메랄다만이 물을 먹여준다. 그 이후부터 카지모도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데......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