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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저자 : 찰스 디킨스
  출판사 : -
  출판년도 :
  분야 : 해외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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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저자 : 찰스 디킨스 / 출판사 : 혜원출판사
교보문고  BCMall     
위대한 유산
저자 : 찰스 디킨스 / 출판사 : 다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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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저자 : 찰스 디킨스 / 출판사 : 문학과현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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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찰스 디킨스 지음



▣ 저자 찰스 디킨스(1812. 2. 7 ~ 1870. 6. 9)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작품들은 성서와 셰익스피어의 작품 다음으로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고 있다. 그만큼 그의 인기는 대단한 것이어서 국내에서도 이미 그의 작품 한둘쯤은 읽어 보지 않은 독자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세계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찰스 디킨스의 생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1812년 영국 남단에 있는 군사 항구인 포츠머스 근교에서 해군성 경리부 서기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상냥하고 낙천적인 기질을 지녀 나쁜 사람이라는 평은 듣지 않았으나 약간 주책스럽고 가끔씩 무의식적이나마 신의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일하던 해군 경리부에서 상당한 지위에 있던 사람의 딸로서 순진하고 마음은 착했으나 허영심이 많은 여성이었다. 한편 그의 할아버지는 남의 집 하인의 신분으로 있다가 출세하여 어느 거물급 인사의 청지기가 되었고, 그의 아내 즉 디킨스의 할머니도 오랫동안 하인의 신분에 머물러 있었다. 즉 디킨스의 선조대는 모두 남의 집의 고용인 출신이었다. 따라서 디킨스의 아버지가 정부의 관리가 되었고, 자기보다 가문이 좋은 집안의 딸과 결혼한 것은 확실히 그들 집안의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후 아버지가 런던으로 전근되었고, 1817년에는 다시 켄트 주에 있는 항구 도시 채텀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채텀은 낡은 대회당이 있는 도시로서 체스터를 이웃하고 있고 석회질의 언덕이 많은 밝은 도시였다. 이곳의 거리와 풍물은 나이 어린 디킨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새겨 주었다. 당시 그의 가족들이 살고 있던 집은 지금도 시가지 한쪽 언덕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잉글랜드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켄트의 아늑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훗날 디킨스가 채텀 시대를 거의 유일한 행복했던 추억의 시절로서 그리워했던 것은, 당시 그의 가정생활이 순조로웠던 때문만은 아니고 이 고장 자체가 매우 아름다웠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행복했던 어린 시절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1824년 아버지가 다시 런던으로 전근한 무렵부터 집안 살림이 기울기 시작하더니 이어 파탄이 일어나, 디킨스는 구두약 공장에서 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그러한 굴욕에 정신적 타격을 받는다. 정부 관리의 아들이었던 그가 한낱 어린 노동자가 된 것은 단지 그 자신만이 전락한 데 그치지 않고, 대대로 사회적 계층을 올라가려고 노력한 입신 과정이 갑자기 역전된 것이었다. 소설가 디킨스가 내포하고 있던 기묘한 아이러니가 이 일로 말미암아 싹트게 되었다. 소년 디킨스가 노동을 시작하면서 곧 아버지가 빚을 갚지 못해 투옥되자, 그는 대도시의 혼잡 속에서 고독감을 느끼게 되고 그의 정신적 성장은 현저하게 왜곡되었다. 수개월 후 부친이 석방되자, 그는 공장을 그만두고 비로소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1827년 디킨스는 어느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나 이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종종 연극을 구경 다니기도 하고 아무 목적 없이 거리를 방황하기도 했다. 약 2년 후 그는 마침내 신문사의 기자가 되었다.

디킨스는 소년 시절부터 고전을 탐독하면서 일찍부터 문학에 대한 눈을 떴는데, 여기에 기자 생활은 많은 여행과 만남을 통하여 세상에 대한 풍부한 관찰과 경험과 식견을 더해 주었다. 이 시기에 그가 보고 들은 풍속 스케치를 신문 잡지에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이것들을 모은 책이 곧『보스의 스케치집』이다. 훗날 『데이비드 코퍼필드』 속에 도울러로 등장하는 소녀에게 연정을 품었던 것도 이 무렵이다. 하지만 그 소녀와의 사랑은 혼자만의 짝사랑처럼 되어 실연으로 끝나고 만다. 1836년 24세의 나이로 캐더린 호가드와 성급하게 결혼을 하지만, 성격적으로 맞지 않은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1836년과 1837년에 걸쳐 『보스의 스케치집』의 확대판이라 할 수 있는 『픽윅 페이퍼스』를 간행하는데, 이 책으로 디킨스는 명성을 얻게 된다. 곧이어 『올리버 트위스트』『니콜라스 니클비』『골동품 상점』『바나비 러지』를 출판하였다. 1842년에는 미국을 여행하며 느낀 인상기를 적은 『미국 기행』을 냈고, 이어 『크리스마스 책』 중 제1편 <크리스마스 캐럴>을 비롯하여 계속하여 장편 소설『마틴 치즐위트』를 발표하였으며 이탈리아를 여행하고는『이탈리아의 정경』을 발표하였다.

1846년『돔비와 그 아들』을 쓸 무렵부터는 디킨스의 작품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처녀작 이래로 동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웃에 대한 선린을 찬양해 온 디킨스는, 작가적 수련을 쌓아 올림에 따라 사물과 인간관계에 대한 눈이 날카로워지고 인간 사회의 실정을 깨달은 듯하다. 또 민중 속에서 태어난 그는 작가적 명성과 함께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자 자신의 입장이 민중들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음을 깨닫게 된 듯도 하다. 초기의 '돈키호테'적인 선의는 버리지 못했지만 묘사가 어둡고 안타까운 초조감이 감돌게 된다. 그의 대표작인 『데이비드 코퍼필드』는 그의 작가적 경력의 중간쯤에 위치하며,그와 같은 작품의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러한 작품의 변화가 균형 잡힌 작품성의 형성에 이바지했다.

1850년에는 주간 잡지인 <귀에 익은 말>을 창간하여 성공을 거둔다. 이 잡지는 그 후 10년 동안 계속하여 간행되었고, 디킨스는 이후 자신의 작품을 분책으로 내고 또 이 잡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이 시기의 작품으로는 『어린이 영국사』 『쓸쓸한 집』『고된 시기』『귀여운 도릿』 등이 있다. 디킨스는 잡지의 성공 등으로 그제야 사회적 명사가 되고, 금전적으로 부유해져 1855년에는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던 갯즈 힐 저택을 사기 위해 교섭을 벌인다. 한편 경제적인 성공은 그로 하여금 사회사업에도 손을 대게 했으나 그때부터 그의 내면생활은 차차 분열되는 듯한 양상을 보였다. 디킨스 자신도 이를 의식하고 자기 분열적 의식에서 탈출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1858년에 자신의 작품에 대한 공개 낭독을 시작했는데 크게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그 일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건강을 해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 해 아내와 별거를 시작했는데 최근의 고증에 의하면 아마추어 연극 상연 때에 출연시킨 젊은 여배우 엘렌 터너와의 스캔들이 그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는 개성이 없는 아내와의 무의미한 일상생활을 견딜 수 없어 하던 차에, 엘렌에게서 첫사랑의 아련함을 발견하고, '데이비드 코퍼필드'처럼 곧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 낸 여자의 영상에 자신의 나이를 잊고 열중했다. 평온했던 가정생활을 파탄에 몰아넣고 미풍양속을 존중하는 시대정신에 거슬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이 시기의 작품은 차차 어두운 색채를 띠게 되는데,『두 도시 이야기』『위대한 유산』『우리들의 친구』『에드윈 드루드』 등의 장편소설과 수상 스케치집으로『비상용 여행자』등이 있다. 1867년부터 이듬해 건강의 악화로 의사로부터 활동을 금지당할 때까지 미국을 여행하며 각처에서 공개낭독을 하여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1870년 건강이 약간 호전되자 다시 공개낭독을 나섰으나 이때는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나 빅토리아 여왕을 단독으로 알현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 해 6월부터『에드윈 드루드』를 분책으로 출판하기 시작했는데 예정의 채 반도 끝나기 전에 저녁 식탁에서 일어서다 갑자기 쓰러진 후 1870년 6월 9일 결국 의식불명인 채 사망하였다. 사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까지 디킨스는 문인으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으나 만년에는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어떤 의미에서 아이러닉한 인생의 단적인 증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느 면으로나 디킨스는 대중적 작가로서 현재까지 이름을 남기고 있으며, 영국 문단의 대표적인 문인 중의 하나이다. 생전에 인기를 크게 떨쳤을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널리 애독되어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지 않고 더욱 증대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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